항목 ID | GC0900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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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池庵 |
영어공식명칭 | Geumjiam Temple |
이칭/별칭 | 금지사(金池寺),금지암(金池菴)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월명산길 487[금지리 404-1] |
시대 | 조선/조선,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선용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71년 - 금지암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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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금지암 범종 봉안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금지암 임도 개설 및 전기 공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 금지암 절터 및 토지 회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 금지암 나한전과 산신각 신축 불사 및 산신각 단청 불사 |
현 소재지 | 금지암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월명산길 487[금지리 404-1]![]() |
성격 | 사찰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월명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금지암(金池庵)은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과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 경계에 있는 높이 544m의 월명산 정상 부근 남쪽 9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암자이다.
절에 있는 우물에서 금리어(金鯉魚)가 나와서 ‘금지사(金池寺)’라 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그러나 금지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신경준의 『가람고(伽藍考)』, 『범우고(梵宇攷)』 등에는 모두 ‘금지암(金地菴)’으로 되어 있다. 1871년 주지였던 대성(大成)이 홍산의 지현(知縣)인 정기화의 도움으로 재산을 모아서 건물들을 새롭게 고치고 절의 이름도 ‘금지암(金池庵, 金池菴)’이라 하였다. 1909~1929년에는 승려 1명이 판도방(判道房)에 해당하는 건물 1동에 관세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1927년 5월 21일 자 『매일신보』를 보면, 금지암은 오래된 사찰로서 경치가 좋고 특히 백운대 아래에 있는 자하천이라는 약수가 널리 알려져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금지암에서는 비교적 오래전에 발행 연도 및 편자 미상의 『연주시(聯珠詩)』 1책을 제작한 적도 있고, 1919년에는 아미타후불도와 칠성도를 제작하여 극락전에 봉안한 바 있다. 1999년 범종을 봉안하고 1999년 사찰에 이르는 임도 개설과 전기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또한 2000년에는 6·25 전쟁의 혼란기를 틈타 개인 재산으로 등록되었던 금지암 소유의 임야 약 13만 8843㎡[4만 2000여 평]와 절터 1,487㎡[450평]의 토지를 재판으로 회수하였고, 나한전과 산신각을 신축하였다. 그 뒤에는 다시 산신각의 단청 불사와 오백나한의 봉안을 이루었으며, ‘도진스님공적비’와 ‘오백나한조성연기문’을 조성하였다.
금지암은 새벽, 아침 10시, 저녁의 하루 3회 예불을 하고 있으며, 매달 초하루 및 보름에는 정기적으로 법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금지암에는 2022년 현재 극락전·나한전·산신각·요사채 등의 건물과 ‘도진스님 공적비’, ‘오백나한조성연기문’ 등 2기의 비, 노은당지홍종사의 부도 1기가 있다. 2015년 제작한 현판의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불·대세지보살·관세음보살의 삼존불과 석조미륵반가사유상, 후불탱화 3점 등이 봉안되어 있다. 2022년 현재 금지암에 소속된 승려는 1명이다.
금지암 극락전에는 조선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석조미륵반가사유상이 있고, 벽면에는 경인(敬仁)과 성엽(性曄)이 1919년에 제작한 아미타후불도와 칠성도가 있다. 금지암에서 제작한 발행 연도 및 편자 미상의 『연주시』 1책의 필사본이 국립중앙도서관 춘호재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