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31 |
---|---|
한자 | 劉昌烈 |
영어공식명칭 | Yu Changye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12월 20일![]()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유창열 대한민국임시정부 충남지부 특파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2월 20일 - 유창열 일본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4월 27일 - 유창열 공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공갈 미수로 1년 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4월 25일![]()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출생지 | 문신리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
![]() |
거주|이주지 | 문신리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5묘역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민국임시정부 충남지부 특파원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유창열(劉昌烈)[1897~1980]은 1897년 12월 20일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10월 추재도(秋載道)의 권유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충남지부 특파원이 되어 청양군 내 자산가 등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1920년 음력 11월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 집에서 추재도와 회합하였다. 추재도는 1919년 음력 9월 이시우(李時雨)의 권유로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애국단(愛國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 중이었다. 유창열과 추재도는 “애국 사상을 가진 조선인 동포는 마땅히 자기의 생활을 돌보지 않고 조선독립운동을 위하여 자금을 출연해야 한다”라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1920년 12월 중순부터 추재도 등과 함께 이기춘·이상덕 등에게 통지서에 기재된 금액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1921년 2월 20일경 이상덕의 집을 재차 방문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유창열은 1921년 3월 31일 기소되어 4월 2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공갈 미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80년 4월 25일 사망하였다.
[묘소]
유창열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유창열의 공적을 기려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