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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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載喆 |
영어공식명칭 | No Jae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11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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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노재철 충청남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자금 조달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8월 - 노재철 일제 경찰에게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9월 18일 - 노재철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9년 형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2월 - 노재철 출소 |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8월 5일![]()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노화리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노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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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노재철(盧載喆)[1889~1961]은 1889년 11월 21일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노화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북로군정서에서 파견된 예산 출신 김영진(金暎鎭)을 만나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같은 마을 출신인 김백순(金伯順)·김형제(金亨濟), 합송리 출신 이창호(李昌鎬)와 함께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에 입단하였다.
대한건국단은 1920년 초 논산 출신 윤태병(尹泰炳)이 윤상기(尹相起)·백남식(白南式)·이상설(李商雪)·조병채(趙炳彩) 등과 함께 항일 독립 사상 고취와 군자금 모금을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대한건국단 단원들은 1920년 3월 6일 금산의 부호 송석기(宋錫驥)·윤상응(尹相應)의 집에 무장을 하고 찾아가 군자금을 모집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흩어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격문을 배포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노재철과 이창호·김형제·김백순 등은 충청남도 및 전라도 일대에서 군자금 수천 원을 조달하여 북로군정서에 전달하는 등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0년 8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노재철은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9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7년 2월 출소 후에도 고향에서 사숙을 운영하며 청장년의 정신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다. 1961년 8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노재철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