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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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泰昊 |
영어공식명칭 | Kim Taeh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정의]
충청남도 부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태호(金泰昊)[1880~1919]는 1880년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가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김태호는 이백순(李伯純)과 함께 천도교 논산교구실에서 민영순(閔泳淳)으로부터 「독립선언서」 40매를 수령하여 밤 9시경 부여에 도착하였다. 김태호는 천도교 부여교구실에서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최규석(崔奎錫) 등을 만나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하였다.
김태호는 3월 12일 오후 3시 30분 강경면에서 면민들과 학생 100여 명에게 태극기를 배포하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태호 등이 이끄는 시위대는 논산 읍내로 진출하여 1,000여 명으로 인원이 불어났다. 이후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헌병대가 시위 군중에게 총격을 가하여 염상오(廉象五)·박용진(朴容鎭)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태호는 저녁 무렵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2월 27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김태호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독립유공자 3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태호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